덕유산 눈꽃 트래킹

춥고 메마른 겨울, 어딜 가도 느긋한 걷기 여행을 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제대로 된 겨울 여행이라면 추위마저도 즐거워야 한다.
하얀 눈과 상고대가 설국을 이루는 덕유산을 찾아보자.
설천봉에서 향적봉을 거쳐 중봉에 이르는 능선 길은 편안하기도 하지만 눈꽃과 주목이 어우러지는 비경들로 눈이 즐겁다.
춥고 눈보라 치는 겨울이기에 가능한 풍경들이다.

아무리 걷기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일지라도 나무들의 잎이 모두 떨어지고, 건조한 겨울철에는 마땅한 여행코스를 찾기 힘들다.
게다가 추위까지 더해지니 여간 망설여지는 게 아니다. 겨울이라는 계절 자체는 그렇게 사람들의 몸도 마음도 움츠러들게 한다.
하지만 제대로 된 겨울여행이라면 그 추위까지도 즐거워야 하는 법.
하얀 눈이 설국을 이룬 곳을 찾아 눈꽃 트래킹을 즐긴다면 추위마저도 행복함이 된다.
눈꽃 여행이라고 하면 강원도의 태백산과 무주의 덕유산을 그 첫 번째로 꼽는다.
태백산맥에서 뻗어 나온 소백산맥과 남녘의 어머니 품 같은 지리산을 잇는 덕유산은 덕(德)이 많고
너그러운 어머니 같은 산이라고 붙여진 이름인데 그 꼭대기는 1614m의 향적봉이다.
한 겨울이면 스키어와 보더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덕유산 리조트에는 설천베이스에서 해발 1520미터의 설천봉을 이어주는
곤돌라가 설치되어 있어 제대로 된 준비를 하지 않더라도 눈꽃 산행을 맛보기로 즐길 수 있다.
온 세상이 하얗게 눈꽃으로 뒤덮인 순백의 산길은 누구라도 걸어보고 싶은 길이라서 주말엔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인데,
요즘은 동남아시아나 중국 등의 겨울을 보기 힘든 지방의 여행객들까지 더해져 기다리는 시간이 좀 길어진 게 흠이다.

덕유산 자락의 백련사에서 시작되는 구천동 계곡은 물길을 따라 폭포와 담소, 기암절벽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만드는데,
무주 1경인 라제통문에서부터 33경인 덕유산 정상의 주목군락까지 헉 소리 나는 절경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곤돌라를 이용하지 않고 향적봉을 오르려 한다면 삼공리에서 백련사까지 이어지는 6.5킬로미터의 계곡트래킹을 시작으로 산행을 하면 된다.
반면, 설천봉-향적봉-중봉에 이르는 능선 코스를 따라 눈꽃 트래킹을 하려면 곧바로 설천봉으로 올라보자.
8인승 관광곤돌라는 무려 길이가 2.5킬로미터에 이르는 설천봉을 향해 움직인다.
곤돌라가 고도를 높이자 눈밭에서 속도와 스릴을 즐기는 스키어들은 점점 멀어지고 창밖의 하얀 풍경은 이내 짙은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산 위의 날씨는 장담할 수 없다.
특히 해발 1500미터가 넘는 산들은 구름 속에 가려져 있는 경우도 많고, 또 겨울철 함박눈이 내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가끔씩 보여주는 파란 하늘은 하얀 눈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그림을 만들어 내기도 하는데,
푸르다 못해 검푸른 빛깔을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면 쌓인 스트레스가 모두 날아가 버린다.
설천봉의 상징물처럼 여겨지는 근엄한 상제루를 지나면 향적봉으로 이어진 0.6km의 등산로로 들어서게 된다.
길의 대부분이 나무 데크와 계단으로 되어 있어 걷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하지만 정상까지 가겠다고 생각했다면 방한준비를 제대로 하는 게 좋다.
거리가 가깝다고 얕봤다간 영하 20도의 매서운 칼바람에 혼쭐이 날지도 모른다.
또 눈이 많이 내렸다면 미끄러짐을 방지하기 위해 아이젠을 착용하는 것이 좋다.
날씨가 쾌청하다면 향적봉을 중간 쯤 오르다가 설천봉을 내려다보자.
그 풍경이 천상의 도시를 연상케 할 만큼 이국적이다. 그 너머로 적상산의 산정호수가 손에 잡힐 듯 눈에 들어온다.
향적봉에 오르면 켜켜이 이어지는 산들의 능선이 그러데이션 되어 그려진다.
향적봉 주변으론 주목들이 군데군데 위용을 자랑하고 있어 고산의 느낌을 제대로 전해준다.
붉을 朱(주)자를 쓰는 주목은 이름처럼 붉은 색을 띠는 멋스런 나무다.
해발 1000미터 이상의 높은 곳에서만 자라는데, 살아서 천년, 죽어서도 천년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다고 해서 지조와 우직함의 상징이기도 하다.
덕유산 설천봉과 향적봉 사이에도 군락이 있지만 더 많은 주목 군락과 한적한 분위기의 산길을 걷고 즐기고 싶다면
향적봉을 넘어 중봉에 이르는 코스까지 가보는 것이 좋다.
길은 능선을 타고 이어지기 때문에 걷기에도 편안하다.
높은 산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하얀 눈길을 따라 뽀드득거리며 걷다보면 겨울의 추위 따위는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만다.
눈꽃이 주렁주렁한 주목과 상고대가 어우러지는 눈꽃 트래킹의 즐거움을 덕유산에서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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