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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 산 도 마지막 이야기 **







이리저리 내팽겨쳐진 허름한 나무배는 주인을 잃은듯 당리의 한 방파제 구석에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마저도 놀이터인양 마냥 즐겁기만하다.





다시 청산항으로 돌아나오는 길,

멀리까지 물이 빠진 갯가는 초록의 파래들이 작은 바위들을 싱싱하게 뒤덮고

아낙들은 호미로 그 사이을 파내며 무언가를 열심히 캐내고 있다.

아마도 조개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당리를 지나 읍리를 향하면 수령 300년의 팽나무가
길가에 떡하니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펼쳐져 있다.
이리저리 마구 뻗어있는 굵은 나뭇가지들은 한여름 하늘을 빼곡히 막아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겠지.




전선 위에 앉은 참새 두 마리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잠시 쉬어가기도 한다




















다시 청산항으로 돌아왔다.
해가 지려면 아직까지 두 어시간은 더 있어야 한다.
방파제 안쪽으로 가지런히 정박해 둔 어선들이 붉은 저녁을 기다리고 있다.







방파제에서 낚시를 즐기는 태공도,

무언가를 잡으러 다시 출항하는 작은 어선도.

청산도에선 그저 평화로움만 남아있다.




해질 무렵 다시 당리 유채꽃밭 언덕에 올랐다.

청산도의 일몰을 보기 위해서다.

낮 시간에 활기차던 섬은 대부분 마지막 배로 나가 버린 관광객들로 한적한 시골 섬마을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듯 하다.

저녁 바람에 너울거리는 보리밭의 춤사위는 도락리와 청산항 사이로 지는 붉은 노을과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밭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농부와 소의 모습은 시간을 30년쯤 되돌려 어린 시절을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한껏 붉은 기운을 내뿜던 태양은 멀리 청산항 끄트머리로 마치 화산이 불을 토해내듯 정열적으로 주변을 붉게 물드이더니

이내 바다 속으로 사그라들어 버리고만다.




노란 유채는 붉은 청산도의 일몰 속으로 그렇게 그렇게 빨려들어 별빛 아름다운 밤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해가 지고나면 청산도는 더욱 적막함에 휩싸인다.

하지만 그저 시원한 바닷바람과 찰싹이는 파도 소리만 들려오는 청산도 바닷가의 밤은

오히려 사색을 할 수 있고, 또 잠시나마 마음을 추스릴 수 있는 여유를 선사하기도 하니

한 번쯤은 할 일 없는 하룻밤도 꽤나 의미있는 밤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5시30분. 바닷가의 아침은 뭍에서의 아침보다 훨씬 빠르게 밝아 온다.





서둘러 장비를 챙겨 진산리 갯돌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부흥리 고갯길을 넘으니 멀리 신흥리 앞바다는 이미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 서둘렀어야 했나보다.

갯돌해수욕장에 도착하니 바닷가의 해송들 사이로 찬란하게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잔잔한 바다를 뚫고 오늘 하루도 청산도에 찬란한 빛을 비춰줄 태양이 또 오른다.

깨끗한 대기 덕분에 그 어떤 곳의 일출보다 붉고 강렬하기만 하다.












이제 곧 추수를 해야 할 보리는 황금색으로 바람을 맞아 휘청거린다.

그 황금빛은 아침 햇살 덕분인지 더 밝고 아름답게 휘날린다.

마치 바람의 리듬에 맞춰 봄의 왈츠를 추듯 말이다.
















구들장 논에 아침 햇살이 닿자 그저 평범해 보이던 논두렁의 윤곽이 선명하게 입체감을 만들어낸다.




















그 흔한 박물관도, 체험장도 없는 청산도.

굳이 그런 곳을 찾아 돌아다닐 필요가 없어서 좋고, 북적임 속에 기웃거릴 필요가 없어 더욱 좋은 청산도.

그저 쉼 없이 달려온 삶에 잠시나마 마음의 여유를 주는 그런 청산도가 좋다.

아침에 왔다 저녁에 훌쩍 떠나버리는 바쁜 여행길이 아닌,

바닷가 파도소리와 함께 마음 편히 쉬어가는 그런 곳이 바로 청산도가 아닌가 생각한다.

돌아오는 길,

분홍빛 자운영이 논밭에 가득한 걸 보니 농부들이 바빠질 시기가 되어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