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er::74a961e7-578f-4011-8815-9e58c3b2838d



매물도의 하루는 참으로 길다. 여행객이 많은 토요일도 이정도라면 비수기엔 아마도 하루가 한달 같을지도 모른다.
남매바위 근처로 한바퀴를 돌며 저녁 일몰때의 방위각도 살펴보고 어떻게 찍을 것인지를 구상해 보았다.
사실 매물도는 남북으로 길게 놓여있어 일몰과 일출 장면을 담기에는 보조 피사체가 부족하다. 그래서인지 매물도의
일몰과 일출을 담은 사진은 보기가 힘들었나보다.
등대섬을 서쪽이나 동쪽에 가져다 놓으면 좋겠다는 허설의 말에 공감이 간다. 섬을 만든이가 사진가는 생각하지 않고
만들었다나 뭐라나.. ㅎㅎㅎㅎ




아뭏든 우리 일행은 민박집으로 돌아와 또 다시 늘어지게 잠을 자기로 했다.
얼마를 잤을까.. 눈을 슬그머니 치켜 떠 보니 하늘이 회색빛이다. 컥...
일몰사진은 틀렸다. 에잇.. 그냥 계속 자버리자. 흑...
또 한참을 잤다. 아주머니와 아저씨의 말 소리 때문에 잠을 깨 일어났다. 서우와 허설도 이제는 일어나려나 보다.
아주머니께서 밥은 언제 먹을거냐고 물으신다. 물론 일몰 사진은 이미 글렀기 때문에 저녁도 일찍 먹자고 했다.

구수한 된장찌게와 깻잎장아찌, 그리고 톳과 비슷하게 생긴 바다식물무침과 숭어찜이 차려진 어촌의 풍성한
저녁상을 받아들고 우린 아저씨와 매물도 이야기를 시작했다.

1980년대 말...
소매물도에는 20여 가구가 살고 있었고, 이 섬을 찾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섬 사람들은 오로지 어업을 통해서만 생계를
꾸려갔고, 섬을 떠나 뭍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섬의 집한채와 땅을 팔아서는 뭍에서 월세방 하나도 얻기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에서 낚시를 왔던 어떤 이들이 섬을 다시 찾아,
당시 한채에 100여 만원하던 집을 1,500 만원을 줄테니 팔라고 한다. 게다가 집과 땅을 다 팔고도 이곳에서 살고 싶을때까지
계속 살면서 땅을 사용해도 된다는 약속까지 해주니 당시 사람들은 너도 나도 모두 팔아 버렸다.
결국 소매물도 전체는 서울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5명의 사람들에게 모두 팔렸다고 한다.

1990년대 말...
IMF구제금융을 지원받는 어처구니없는 대한민국 최대의 부도위기를 맞아,
당시 섬을 사들였던 5명 중 단 한명를 빼고는 모두 사업을 실패하여, 해외 도피등으로 사라져 버렸다.
남은 한 사람이 섬을 관리하기 힘들자, 관리인을 임명하여 섬을 관리토록 하였지만,
2년여간 이 섬의 관리를 맡았던 이는 결국 실제 섬을 유지관리했던것은 자신이며, 정당한 보상을 받기위해
법원에 소송을 걸어 승소하였다. 법원에 의해 경매가 진행되어 이 사람은 소매물도를
단돈 3억 8천만원에 사들였다고 하니, 대단하면서도 어처구니가 없다.
한해 10만명 이상이 찾아드는 소매물도는 결국 지금 살고있는 주민들의 것이 아니다.
언제라도 퇴거명령 쪽지를 받는 날 다른 곳으로 쫒겨나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소매물도는 번듯한 시설을 갖춘 팬션이나, 식당같은 것들이 전혀 없는 것이다.
하물며 자신이 살고있는 집 마저도 수리하거나 보수하지 않는다.
겨우.. 비 바람만 피할 정도를 유지하고 있을 뿐.....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 저 멀리로 붉은 기운이 느껴진다.
앗.. 노을이다.
얼른 카메라를 둘러메고 남매바위 근처로 뛰어올라갔다.




포구의 모습이 제대로 담기지 않아 좀 더 높은 곳으로 뛰어올라가야겠다.
하지만 잠시 보이던 태양의 모습은 이내 구름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너무나 아쉬운 순간이다.
하늘이 심술을 부리나보다. 결국 서우는 카메라를 꺼내보지도 못했다. ㅋㅋㅋ




발걸음을 옮겨 등대섬이 보이는 뒷동산으로 가기로 했다. 해가 떨어지고 어두워질 무렵이면
등대가 불을 밝힌다고하니 어두워지기전에 가보아야 겠단 생각이다.
삼각대를 펴려고하는데 이슬비같이 물방울들이 얼굴에 닿는다.
허걱... 비가 온다.. ㅠㅜ 제길슨....
얼른 몇 컷을 찍었다.  빗방울이 계속 많아진다. 렌즈에 작은 물방울이 계속튀면서 장시간
노출을 주고, 조리개를 조이니 사진에 나타난다. 우산도 없다.
구름이라도 이쁘면 좋겠지만, 그렇지도 못하다.
이번 매물도 출사는 이렇게 끝이났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하지만 한낮에라도 잠시 해가 떴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위안을 삼는다.

해가 지고나니 가로등도 없는 어두운 산길을 헤쳐 나가려니 힘들다.게다가 비까지..
작은 손전들 하나를 꺼내 서우에게 주었다. 나는 며칠전 구입한 LED 헤드랜턴을 착용했다.
오호..이거 무쟈게 밝고 좋다. 거기다 머리에 딱 붙이고 두 손이 자유로우니 아주좋다.
밝기도 무척 맘에 드는데.. 이걸 겨우 4,000원 주고 샀다고하니 일행들이 부러워한다... 으쓱..ㅋㅋㅋ

남도의 늦가을은 아직도 내륙의 한여름이다. 게다가 사진을 찍으러 산을 넘어갔다 왔더니 너무 덥다.
숙소로 돌아와 등목을 했다. 얼마만에 해보는 등목인지..ㅎㅎㅎ

허설이 담배를 꼬나물고 길게 연기를 내뱉는다.




시계를 보니 7시가 조금 넘은시간... 아직도... ㅡㅡ;
매점에 가서 과자와 음료수를 사와야겠다. 비는 점점 더 많이 내리는데 우산이 없다.
빗줄기가 잠시 약해질 무렵 얼른 매점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매점이 문을 닫았다. ㅠㅜ 전화번로를 문에 붙여놓았지만 전화기를 놓고왔다.
숙소로 돌아와 전화를 하니 바로 윗집에 있단다. 히~ 다행이다.

과자 몇개와 음료수를 가지고 이야기 꽃을 피웠다.
동호회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 사진 이야기...

문명의 이기와 동떨어진 이곳에서 맘껏 시간을 죽이고 30년쯤 전으로 돌아간듯 하다.
가끔은 이런 여유속에 빠져보는 것도 좋을듯 하다.

허설이 장난을 한다.





잠이 어떻게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모기가 웽웽 거리는 통에 잠을 깨어보니 아침이다.
빗줄기는 더욱 굵어진듯 하다. 원래 계획은 일출을 찍는거였는데... 쩝...
8시 20분에 첫배가 있다. 지금은 7시...
아... 한시간이 넘도록 뭘할까...
아주머니께서는 아침은 통영 나가서 먹으라신다. ㅡㅡ; 배고파....
남은 과자를 먹으며 시간을 죽이고 있으니 빗방울이 가늘어진다.




8시가 조금 넘은 시간... 아저씨께서 이제 곧 배가 들어온다고 하신다.
우린 얼른 짐을 챙겨 선착장으로 나갔다. 비는 거의 멎었다.
허설이 갑자기 후다닥 민박집으로 뛰어올라갔다. 어제 샤워하면서 시계를 풀러놓고 왔단다.
그래도 지금 생각이 나니 다행이다.

뱃고동 소리를 울리며 쾌속선이 다가온다. 아..선장님을 보니 어제 타고왔던 바로 그배다. 반갑다. ^^



배는 대매물도의 선착장 두 곳을 거쳐 비진도에 머물렀다가 통영으로 들어온다.
비진도로 가는 도중 멀리 바위섬 같은게 보였다 사라졌다를 한다..
배가 점점 그 곳을 가까이 지나친다.. 어... 그래도 될까?

아주 가까이 지나갈 무렵...
와~~
돌고래 두마리다.
배 옆을 지나간다.

오늘은 재수가 좋으려나보다.



사진 여행은 늘 즐겁다. 사진보다 좋은 사람들이 함께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