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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킹 5일차 (촘롱 - 시누와 - 밤부 - 도반 - 히말라야)
새벽 5시, 창 밖은 훤하게 날이 밝았다.
커튼을 열어젖히니 눈 앞에 마차푸차레가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안나푸르나를 걷는 동안 매일 아침 이렇게 마차푸차레를 먼저 보게 된다.
다른 산들과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우뚝 서있는 그 모습에서 남다른 신성함이 느껴진다.
카메라와 삼각대를 챙겨들고 밖으로 나갔다.
사진을 찍다보니 검은 개 한 마리가 옆에 와서 나를 툭툭 건드린다.
슬리퍼를 신은 채로 아랫마을까지 내려가는데, 이 녀석도 나를 따라 내려온다.
촘롱 입구의 작은 산장은 제법 근사한 일출 포인트다.
서양 친구들 몇이 일어나 외투를 걸치고 해가 뜨는 설산을 바라보고 있다.
마차푸차레가 태양의 빛줄기를 가르며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사진을 정신없이 찍다가 보니 한 시간 반이 훌쩍 지나버렸다.
다시 롯지에 돌아오니 람도 일어나서 차를 마시고 있다.
마당의 의자에 걸터앉은 독일 아줌마 줄리아는 설산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고,
2층 테라스에선 중국 여자애들이 아침 풍경을 즐기고 있었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계산을 하려고 보니 3,000 루피나 된다.
하루에 지출한 돈으로는 제일 많이 쓴 날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 점심, 저녁, 그리고 오늘 아침 식사, 거기에 와이파이 사용 요금과 커피와 차 그리고 숙박비까지 모두 합쳤으니....
그래도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4만원이다. 4만원에 이렇게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곳이 한국에선 없을 것이다.
게다가 여기는 지구의 지붕이라 불리는 히말라야 산맥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아름다운 자연을 거저 즐기는 기분이든다.
오늘은 시누와를 지나 본격적인 히말라야 협곡으로 접어드는 코스다.
어제 시누와까지 가야했던 일정을 촘롱에서 마쳤기 때문에 오늘은 그만큼 더 걸어야 한다.
그러니까 조금 서둘러서 부지런히 걸어야만 한다.
촘롱을 떠나 내리막을 따라 계곡에 닿자 다시 출렁다리가 나타난다. 출렁다리를 지나면서 길은 잠시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시누와까지는 완만한 능선 길이라 편안하다.
시누와에 들어서 잠깐 숨을 돌리며 쉬고 있는데,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비석차기를 하며 놀고 있다.
한국의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정말 귀여워서 웃음이 나온다.
그래서 잠깐만 쉬려던 계획을 뒤로하고 배낭을 풀르고 긴 휴식 시간을 갖게 되었다.
커피도 한 잔 마시면서 말이다.
그리고는 사진을 한 장씩 찍어주었는데 서서히 나타나는 자신들의 모습을 보여주자 신기한듯 소리를 쳤다.
할아버지 한 분이 내 팔을 끌어 당시며 처마에 매달린 바구니를 보여준다.
처음에 나는 닭이 계란 낳는 곳인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 속에는 갓난 아이가 누워 있는 게 아닌가.
생후 40일 된 아기란다. 자기는 그 아이의 할아버지고.
그래서 사진을 함께 좀 찍어 달라는 것.
나는 사진 찍어주는 일이 좋다. 그 사진을 보고 정말로 즐거워하고
내 사진을 정말로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 옆에서 나를 지켜보던 뉴질랜드 할아버지 데이빗은 "Magic of Tracker!!!" 라고 말한다.
트래커의 마술이라...
아니다.
이건 사진의 힘인지도 모른다.
사진 한 장으로 인해 시누와의 사람들과 나는 금세 친구가 되었다.
길을 떠나기 전, 한국에서 준비한 학용품 세트와 머리핀, 그리고 쵸콜렛을 동네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시누와를 지나 밤부로 가는 길, 숲 속에서 약초를 캐는 소년을 만났다.
나무 위에 맨손으로 올라가 앉아있는 소년의 사진을 찍어주다가 그만 물통을 잃어 버렸다.
트래킹을 하는 동안, 자연 보호를 위해 PET 병 사용을 자제하고 스테인레스 물병을 가지고 다녔는데 그만 어디선가 빠져버린 모양이다.
돈이야 몇 만원 안 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없으니 참 아쉽다.
람이 어디서 PET 병을 하나 구해서 내게 가져다 주어서 트래킹 하는 동안 물을 마실 수 있었다.
시누와에서 밤부까지 가는 길은 정말로 숲속의 오솔길을 걷는 느낌이다.
아마도 여태까지의 트래킹 코스 중에서 가장 편안하고 아늑한 길인듯 하다.
Bamboo를 지나 Dovan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Hymalaya로 출발했다.
첫날을 제외한다면 가장 오래 걷는 날이다.
간간히 빗방울이 떨어지는데, 이번 트래킹 중에서 비를 만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만큼 운이 좋았나보다.
하지만 오늘은 비를 맞게 되려나보다.
배낭에 레인커버를 씌우고, 나도 고어텍스 점퍼를 꺼내서 입었다.
빗방울이 점점 더 굵어지기 시작하자 마음도 급해진다.
히말라야를 15분 정도 남겨 두고 람이 말했다.
"내가 먼저 가서 방이 있는 지 알아 볼게. 만약 방이 없다면 우리는 걸어서 한 시간 정도 더 가서 Deurali 까지 가야만 해. 운이 좋기를 바래야지."
내가 히말라야에 도착했을 때, 람은 웃으며 내 배낭을 들어줬다.
"우리가 마지막 방을 잡았어. 2인 실이기 때문에 혹시라도 한 명 쯤 온다면 같이 묵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방값을 나눠서 내기 때문에 나쁘진 않을 거야."
내가 숙소에 들어서자 마자 비는 폭우로 바뀌어 내리기 시작한다.
촘롱에서 만났던 중국 여자애들은 먼저 도착해서 따뜻한 차를 마시고 있다.
한명은 이름이 '죠우 죠우', 다른 한 명은 '티엔 티에'다.
26살이란다. 한 명은 윈난성의 성도인 쿤밍에 살고 있고, 다른 한 명은 쓰촨성의 청두에 산다고 한다.
작년에 티벳으로 배낭여행을 갔을 때 만난 사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장마철의 폭우를 연상시키듯 무섭게 비가 퍼붓는다.
그 빗속을 뚫고 뉴질랜드 할아버지 David이 도착했다.
나와 같은 방을 쓸 파트너인 셈이다.
정말 대단한 분이다.
그는 퍼붓는 빗속을 걸어 쫄딱 젖어버린 옷을 입고도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래.. 얼마다 다행인가. 숙소를 찾았으니..
비는 금방 우박으로 변해서 떨어지고, 곧 얼음 반, 비 반의 샤베트가 하늘에서 떨어지기 시작한다.
고산 지역의 날씨는 정말 변덕스럽고 .
옆 방은 6명이 쓰는 룸이었는데, 그 중에 나처럼 커다란 카메라를 가져온 친구가 눈에 띄었다.
인디아에서 왔다는데, 전문 프리랜서 사진가라고 한다.
이름은 "A.J"
그는 스마트폰을 통해서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보여주는데, 사진들이 하나같이 환상적이다.
인도가 그렇게 아름답고 환상적인 풍경을 가진 곳인지 미처 몰랐다.
동질감 때문이었을까? 한참이나 사진과 풍경, 그리고 여행에 대해서 수다를 떨었다.
저녁식사시간이 되자, 식당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기에 그들의 경험담은 정말로 재미있다.
한국에서 온 젊은 여자는 러시아 청년과 커플이다.
포카라에서 만난 사이라는데, 둘이서 트래킹을 즐기는 중이란다.
여행을 하는 동안 수많은 친구들을 만들게 된다.
내 자신이 마음의 문을 열어 놓는다면 말이다.
산 속의 해는 일찍 져버리고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비는 밤새도록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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