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결 투쟁... ^^
예전에는 참 어색했던 단어들인데 어느새인가 저의 머리속에는 익숙한 단어들이 되었습니다.
지난번에 또순여사님께서 직업에 대한 궁금증에 제가 "명함에는 교수"라고 적혀있다고 했지요?
그런데 그건 명함에만 그렇게 되어 있는 겁니다.. ^^ 엄밀히 말해 교수의 '교'자도 못됩니다. ^^
노동부 재출연기관인 한국기술교육대학교를 나왔지요.
모교는 직업훈련교사 양성을 위한 특수목적대학교였구요.
대학교를 졸업하면서 당연히 저는 직업전문학교 교사를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갈 수 있는 자리는 비정규직이라는 자리였습니다.
면접을 보면서 공과 공과장은 시간이 지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받았던 급여는 120만원 남짓이었구요. 그나마 10개월 계약을 하고 2개월은 계약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가정을 꾸리기에는 너무나 부족했으며 정규직에 비해 절반정도밖에 되지 않는 임금을 받았습니다.
2005년 한국산업인력공단법률 개정안과 학교법인기능대학법률 개정안이 나오면서 한국산업인력공단 내부에 있는 직업전문학교가 기능대학으로 통폐합이 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비정규직교사는 정리해고를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2개월간 파업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급여조건은 지난 임금에 비해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정규직에 비하면 60%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파업을 하는 과정에서 노동조합에서 단계적 정규직화를 하겠다고 노동부로부터 합의서를 받아내고 파업을 정리하고 현업에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비정규법이 통과되면서 노동부는 합의서를 이행하지 않고 비정규법에 맞물려 무기계약(영구 비정규직)으로 전환시키려고 합니다.
또한 파업과정에서 위원장을 해고시켰습니다.
이에 저는 또다시 서울로 상경하여 파업을 하고자 합니다.
6월이 되면 파업을 해야 하구요.
오늘은 준법투쟁의 일환으로 투쟁조끼를 입고 교단에 섰습니다.
학생들의 반응을 물었습니다.
"선생님이 조끼 입고 들어오니 어때요?"
"보기 안 좋아요. 벗으세요." 라고하는 학생들이 절반이 넘었습니다.
또 물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여러분을 가르치면서 다른 교수님과 비교했을 때 부족하거나 열의 없이 가르친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비정규직입니다. 같은 노동을 하고 있어도 같은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있을 수 있나요?"
"없습니다."
....
저는 예전처럼 제가 처한 위치와 비정규 법의 독소조항등과 내가 파업을 해야 하는 정당성을 설명했습니다.
누군가는 비정규직 철폐를 외쳐야 하고 그것을 외쳐야 한다면 그 사람이 앉아있는 학생이 아닌 제가 한다고 했습니다.
학생은 앉아서 본연의 자세로 공부를 하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젊디 젊은... 그래서 앉아있는 학생들에게 누나 언니 동생같은 KTX 승무원들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모두가 관심갖지 않아 그 사람들이...
승무원으로서 근무해야 할 사람들이 힘든 싸움을 한다 이야기 했습니다.
모두가 관심갖지 않아 그 사람들이...
이제는 새마을호 승무원도 힘든 싸움을 같이 한다 이야기 했습니다.
모두가 관심가지 않아 그 사람들이...
이제는 당신이 될 수도 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내가 나서서 비정규직 철폐를 외친다고 했습니다.
적어도 가르치는 교사가 떳떳하게 정규직이 되어서... 그 선례가 남아 다른 비정규직들에게 한낱 희망의 빛줄기가 된다면 그렇게 해야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2시간의 수업은 저에 대한 이야기, 비정규직에 대한 이야기, 법률안이 통과되는 이야기, 노동법에 관한이야기, 근로기준법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졌습니다.
수업이 끝나 학생들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선생님이 여러분 앞에 투쟁 조끼 입고 다녀도 되겠지요?"
"네! 선생님 꼭 정규직 되세요"
수업은 끝났고 제 힘은 평정심을 유지하기에 바빴습니다.
제가 잘하고 있는지...
이길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파업하게 되면 대선과 총선이 끝나는 내년 5월이 넘어서야 우리에게 관심을 갖아줄 수도 있습니다.
적어도 1년이 넘는 기나긴 싸움을 해야할지도 몰라요.
색시에게 물었습니다.
"나 1년동안 파업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
"그 동안 한 것이 아깝고 억울해서라도 꼭 정규직이 되어야 되." 하며 올라가라고 합니다.
긴 한숨이 나옵니다.
모두가 관심갖지 않아...
나같은 고민을 하고...혹은 고민조차도 용기가 생기지 않아 주저앉아 버리는 사람이 생길수도 있습니다.
내가 하지 않는다면 그 몫은 내 다음세대....
성희가 할 수도 있고 여러분의 자녀가 짊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 고통은 제가 감내할 크기보다 더 크겠지요?
더이상 카메라에 손을 대지 못할 경우도 생길 것 같습니다.
2005년 파업 때 잃어버린 가을이 제 사진생활에 커다란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냥 제가 서울에 올라가게 되면 아주 가끔이라도 기억해주었으면 고맙겠습니다.
깊은 밤에 두서없이 감성에 이끌려 적었더니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즐거운 시간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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