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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자료는 SK 사외보 '디카를 들고 떠나는 여행' 07년 01월에 소개된 자료로, 무단 복제 및 재배포시 저작권법에 의해 불이익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다른 사이트로의 복사를 절대 금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풍 가기 전 어린아이의 들뜬 마음처럼 먼 여행길을 떠나기 전날 밤은 늘 잠을 설치게 된다. 긴장감 때문일까? 한두 번 새벽에 잠을 깨다 이윽고 3시가 조금 넘어 잠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주섬주섬 차려 입고 집을 나선다. 늘 그렇지만 집을 나와 제일 먼저 하는 행동은 하늘을 바라보는 것. 하늘에 별이 있나 없나를 보고 오늘의 날씨를 짐작하기 위해서다. 반짝이는 샛별을 보니 나도 모르게 입가에 씨익하고 미소가 지어진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신탄진을 지나면서 호남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1시간여를 더 달리니 넓은 평야지대에 우뚝 선 전주 월드컵 경기장이 보인다.

전주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임실로 향하는 27번 국도로 방향을 잡고 전주 시내를 벗어나 시원스레 약 10여 km를 지나니 운암 삼거리다. 옥정호를 끼고 꼬불거리는 강변도로를 10여분을 가니 오봉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옥정호의 조망은 오봉산뿐만 아니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국사봉에서도 그만이지만 겨울철 저 멀리 옥정호의 품속에서 올라오는 일출의 장관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오봉산이 더 제격이다.

등산로에 접어들면서 바로 이어지는 오르막. 15㎏에 가까운 카메라 장비까지 잔뜩 짊어지니 그 오르막이 많이 부담스럽다. 작은 랜턴 하나에 의지해 앞만 보고 한참을 오르다 보니 등줄기에 땀방울이 흐르기 시작한다. 사진을 위한 새벽 산행은 마음이 급하다. 행여 시간을 놓쳐 해가 떠 버리기라도 한다면 그처럼 맥 빠지는 일도 없기 때문이다. 30여분 거친 숨소리를 내뱉으며 오른 오봉산 정상. 그 아래로 보이는 옥정호의 장엄한 풍광을 보는 순간 힘들었던 기억은 사라지고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감탄사를 주체할 수 없게 된다. 아기자기한 산의 능선 사이를 비집고 돌아 나가는 옥정호의 물결과 운해 속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붕어섬은 비경 중에 비경이다.






동쪽 저 멀리서부터 밀려오는 운해의 장관을 보고 있으니 가슴이 콩닥거린다.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많은 사람과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기까지 하다. 옥정호 끄트머리의 산 능선 사이가 벌겋게 달아오르는가 싶더니 주위의 몇 몇 사람이 소리친다. “해가 뜬다!” 그 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서 터지는 셔터소리로 사진가들의 손놀림이 바빠진다.

일출 일몰의 사진들은 여명의 화려한 색감을 잘 나타내야 하는데, 디지털 카메라의 화이트밸런스를 '구름 mode' 혹은 켈빈도 설정 값은 7000k 이상 올려서 촬영하면 그 붉은 느낌을 배가시킬 수 있다. 또 하늘과 땅의 노출차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해 뜨기 직전에 촬영하거나 ‘그러데이션 ND’ 필터를 사용해서 하늘을 좀 어둡게 해 주면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해가 뜨기 시작해서 10분 정도가 지나면 해의 동그란 모습을 화면에 함께 담기는 심한 노출차이로 불가능해진다. 이때는 해보다, 운해 사이로 퍼져 들어가는 빛살을 촬영하는 것이 플레어도 피할 수 있고, 은은한 느낌도 잘 나타난다.





그렇게 한참 동안 셔터를 눌러대다 보니 태양은 옥정호의 한 가운데로 올라왔다. 갑자기 허기가 몰려온다. 그 고장의 맛난 음식을 먹는 것 또한 여행의 매력 중에 하나가 아닐까? 여기까지 왔으니 음식의 고장 전주로 가야겠다. 예로부터 전라도의 음식 맛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알아주지 않는가? 특히 전주는 육회와 여러 가지 나물들이 소담하게 어우러진 비빔밥과 시원한 국물 맛이 일품인 콩나물 국밥으로 유명하다. 전주 남부시장의 콩나물 국밥 골목은 그 전통이 30년이나 되는 원조 중에 원조다. 단돈 4천원의 콩나물 국밥 한 그릇을 시키면 밥공기에 계란 반숙이 함께 나온다. 타지의 음식을 먹을 때 그 방법을 몰라 당황스럽다면 눈치껏 옆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좋다. 우선 김을 잘게 부수어 계란 속에 넣고, 뜨거운 국밥의 국물을 서너 숫갈 떠 넣어 싹싹 비빈 후 떠먹는 것이다. 계란의 비린내도 없어지고, 콩나물 국밥에서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해주니 일석이조. 선조들의 지혜로움이 느껴진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콩나물 국밥에 새우젓으로 간을 하고 돼지고기 장조림을 듬뿍 넣어 숟가락 가득 떠서 깍두기 한 개를 올려 먹는 그 맛. 추운 겨울 새벽 산행이 끝난 다음이라 그런지 꿀맛도 이런 꿀맛이 없다. 따끈한 모주 한잔을 곁들인다면 임금님의 수라상이 부럽지 않다.
전주 주변으론 볼거리가 참 많지만 바닷가 쪽으로 방향을 잡기로 했다. 바로 군산이다. 지금의 군산이라는 지명은 그 유래가 좀 남다르다. 고려시대 여·송 무역로의 기항지였던 군산도는 지금의 선유도다. 하지만 조선 초기에 창설된 수군진영이 옥구현(지금의 전북 옥구군)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군산'이란 명칭까지 옮겨감으로써 지금의 선유도 일대를 '고군산도'라고 부르게 되었고, 군산시는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근래 들어 매스컴에서 소개된 적이 있는 군산 경암동의 철길마을도 군산의 명물 중에 명물. “기차길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 칙 폭 칙칙 폭폭 칙칙 폭폭 기차소리 요란해도 아기아기 잘도 잔다.~~” 이 마을 철로 위에 서 있으면 나도 모르게 입 속에서 웅얼웅얼 노래가 흘러나온다. 군산 E-마트 바로 앞에 있는 이 마을은 열차를 이용해 펄프공장의 화물을 운송하는 길목에 있는데 열차와 집 사이는 불과 50센티도 채 되지 않는다. 12시가 다 되어갈 무렵, 8천 마력의 디젤기관차가 으르렁거리며 집과 집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때는 마을 주변이 초비상이다. 두 명의 인도요원이 요란한 호각소리와 함께 경광봉을 흔들며 사람의 접근을 막고 안전하게 기차의 통행을 확보한다. 대게 하루 한번 정오 무렵 이 곳을 지나기 때문에 그 외에 시간엔 열차가 지나는 모습을 보긴 어렵다.

한바탕 요란을 떤 후 다시 마을은 조용하고 한적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마을 입구에서만난 하얀 털의 강아지. 좀 전 기차가 지날 때 물끄러미 한 곳을 응시하며 무척이나 외롭게 보이던 녀석이다. 가까이 다가가 손을 내밀자 꼬리를 흔들며 혀를 날름거린다. 사람이 그리웠나보다. 기차가 지나간 철길위에 자전거를 올려놓고 수리를 하는 동네 어르신을 만났다.  “요즘 들어 사진 찍으러 오는 젊은이들이 많아.” 라고 하시던 할아버지의 편안한 웃음 속에서 경암동 사람들의 소박한 일상을 엿볼 수 있다. 은은하고 잔잔한 느낌의 사진을 만들고 싶다면 심도가 깊은 광각렌즈보다 아웃포커싱이 유리한 망원렌즈가 제격이다.






군산여객터미널을 지나 군장산업단지 대로를 따라 바닷바람을 마시며 달리기를 10여분. 왼쪽 바다 멀리 군산공항이 보이고, 작은 고깃배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비응항에 다다른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방파제 위에 일렬로 줄을 맞춰 웅웅거리며 바닷바람을 안고 돌아가는 대형 풍력 발전기 여섯 대가 보인다. 일몰시간 이후에는 접근 할 수 없다는 군부대의 경고 문구와 바리케이드를 지나 방파제 위로 올라섰다. 몸이 휘청거릴 만큼 거친 바다바람에 흩날리는 바닷물이 얼굴에 튄다. 하지만 그 기분이 과히 나쁘지는 않을 건 바다가 가지고 있는 매력 때문일 것이다.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내 가슴이 넓어지는 느낌이다.

비응도는 신시도를 거쳐 부안에 이르는 총 길이 33km의 새만금 방조제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지도를 바꾸는 엄청난 규모의 간척사업은 환경운동가들의 반대에 부딪혀 중간에 공사가 중단되는 등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결국 2006년 4월 완공이 되었다. 지금은 배를 타고 가야하는 고군산군도의 신시도를 조만간 자동차를 이용해서 갈 수 있지 않을까? 방파제 위에 올라서서 풍력발전기를 촬영하는 일행의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멋져 보인다.

사진 속에 인물을 넣을 경우 그 사람이 바라보는 방향에 목적물(풍력발전기)을 두어야 편안한 느낌의 사진이 된다는 것도 잊지 말자.








군산은 서해안 무역로의 요지이며, 400여 킬로미터를 흘러온 금강이 바다로 흘러드는 마지막 종착지이기도 하다. 천수만 일대 철새들의 수는 크게 감소한 반면 금강하구언의 철새 숫자는 해마다 늘어가고 있는 추세다. 특히 영화 JSA의 무대가 되었던 신성리 갈대밭 주변으로 모여 있는 수십만 마리의 가창오리와 금강의 햇살을 받으며 유영하는 백조들의 모습은 겨울 철새 도래지의 명성에 걸 맞는 엄청난 장관이다. 철새들은 예민하고 겁이 많아 사람들의 인기척이 느껴지면 금세 다른 곳으로 도망가 버리기 때문에 숨을 죽여 가며 나무와 짚으로 만들어놓은 탐조대 뒤에서 빠끔히 철새들의 움직임을 주시해야한다. 이때는 망원렌즈를 이용해서 촬영해야 하는데, 500mm 정도의 초망원렌즈가 있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렌즈를 사용하려면 흔들리지 않도록 삼각대 역시 필수품목이다. 두꺼운 오리털 파카를 꺼내 입고 보온병에 타온 따끈한 커피를 컵에 한 잔 따랐다. 은은한 커피향이 차가운 강바람과 어울려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여행의 중간 중간에 느끼는 편안한 휴식. 이런 기분이 참 좋다. 어느덧 뉘엿뉘엿 해가 산 너머로 모습을 감추고 서쪽 하늘은 황홀한 붉은 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하루 종일 물위와 갈대사이를 비집고 다니던 철새들이 꽥꽥거리며 날아오르기 시작한다. 나포 들녘 하늘을 쌔까맣게 뒤덮은 60만 마리의 군무를 보고 있으니 몸에 소름이 돋으며 전율이 흐른다.

광각렌즈를 이용하면 하늘과 갈대, 그리고 군무를 함께 담을 수 있다. 하늘색을 강조하고, 가창오리떼의 모습은 실루엣으로 표현하려면 -0.3~-0.6스톱 노출 보정을 하는 것이 좋다. 또한 1/200초 이상의 셔터 스피드를 확보해야만 새들의 날개짓의 선명하게 촬영된다. ISO를 높여서 촬영할 것. 오렌지 빛 하늘을 휘저으며 10여 분간 펼쳐지는 새들의 향연에 넋을 빼 놓다시피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 대다보니 주변이 이렇게 어두워진 줄도 모르고 있었다. 가창오리떼가 내 머리 위를 휘돌아 저 멀리로 모습을 감추자 다시 금강 나포변은 정막이 감도는 평온함을 찾는다.






옥정호의 감동적인 일출을 보며 새해의 소망 기원으로 시작했던 오늘 하루. 그 여운이 올 한 해 동안 내 마음에 잔잔히 남아 힘들고 어려운 일들도 참고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으면 좋겠다. 자. 이번 주말은 가족과 함께 전북 임실로 떠나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