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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순여사 이야기
[세상읽기]







2007년 03월 16일 (금) 14:42:56 이영훈 jinchaya@hanmail.net

내가 참여하고 있는 온라인 카메라 동호회에는 ‘또순여사’란 아이디를 쓰시는 아주머니 한 분이 계신다. 그런데 이 분, 보통 아주머니가 아니다. 대개의 경우 카메라유저 동호회란 곳은, 겉으로는 거짓말 좀 보태면 자기 몸통만한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자들의 모임이다. 속으로는 자타칭 사진 좀 찍는다 하는 사람들의 모임쯤으로 정의할 수 있겠다.


사진전공자들도 꽤 된다. 카메라 장비는 이미 빠삭하게 꿰뚫고 있으며 ‘공돌이 정신’에 힘입어 각종 광학이론과 카메라에 관한 이야기로 밤을 샐 수 있는 자들이다. 대다수 남성의 로망이자 모든 부인들의 공공의 적인 카메라 세계, 그 틈새에서 ‘또순여사’는 벌써 여러 번 자신의 사진을 당당히 ‘쿨갤러리’에 올려  놓았다.


어느 날, 이 아주머니의 글이 게시판에 올라왔다. 자신의 모든 장비를 장터에 이미 내어 놓았으며 이제 그만 사진을 접으시겠다는 내용이다. 모두가 놀라는 가운데 사연은 이러하다. 아주머니와 남편 되시는 분은 주말부부였다. 일주일에 겨우 이틀을 보는 부부, 그런 와중에 취미로 사진을 하신 거란다. 그러다보니 남편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어서 눈치 아닌 눈치를 봐 가며 어렵사리 자신의 취미를 이어 가고 계셨던 것이다.


남편 입장에서는 출사랍시고 일찍부터 집을 나가 남정네들과 어울리는 아내가 못내 야속했겠지만, 아내는 아내대로 새벽 이른 시간의 빛이 좋은 사진을 가져다주며, 출사로 모인다 한들 서로 인사만 나눈 채로 흩어져 각자 제 사진찍기에 바쁘니 자신도 억울함이 없지 않다고 하소연이다. 어찌 되었든, 장비는 좋은 값에 팔렸다는 소식을 뒤로 한 채 며칠이 흘렀다.


모든 이들의 환송을 받으며 떠났던 ‘또순여사’는 다시 모든 이들의 환영 가운데 돌아왔다. 소설 같은 이야기지만 그녀의 장비를 일괄구입한 것은 다름 아닌 남편이었다. ‘또순여사’의 사진생활에 조금 불만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남편은 그렇다고 그토록 하고 싶어하는 사진을 못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아내가 장터에 물건을 내어 놓았다는 사실을 전해듣고는, 부랴부랴 자신의 직장후배를 시켜 웃돈을 주고 일괄예약하게 했다는 사건의 전말(?)이 밝혀졌다. 중년부부의 요란스런 사랑 얘기는 서로를 감동시킨 훈훈한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포기는 배추를 셀 때나 쓰는 말이라지만, 살다보면 ‘또순여사’처럼 포기해야 할 때도 있나 보다. 그러나 잠깐, 여기서 말하는 포기란 성적저하로 명문대의 꿈을 접는 수험생의 현실적응도 아니요, 근사한 자신의 몸을 상상하며 적당한 선에서 밥수저를 놓을 줄 아는, 혼기가 찬 아가씨의 야무진 결단력도 아니다.


차라리, 자신의 생일에 식구들 옷가지를 고르시는 어머니의 마음씨며 피곤한 휴일 아침, 가족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운전대를 잡는 가장의 위선적인 건강함이다.


참으로 어리석게도, 지금에서야 난 내가 행복하다고 느꼈던 순간들이 누군가의 포기를 토대로 있을 수 있었다는 걸 깨닫고 만다. 그들이라고 왜 자기 삶과 자기 시간 귀중한 줄 몰랐을까. 평등하게 분배된 시간이었고 피차 얇디 얇은 지갑이었다.


다만, 나를 위해 자신의 것을 잠시 버렸던 이들에게는 자신보다 남을 더 생각할 줄 아는, 낡고 고장 난 계산기라도 하나씩 있었나 보다. ‘또순여사’가 그랬고 처음 보는 일본인을 위해 지하철 선로에 뛰어들었던 고 이수현씨가 그랬다.


성서는 밭에서 보물을 발견한 자가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 그것을 산다고 전한다. 애지중지하며 꼭꼭 숨겨놓은 걸 끄집어 내고는, 버리듯 무언가와 바꾸려는 것은 필경 자신의 것보다 더 큰 가치를 발견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일게다.


다 ‘또순여사’ 같지는 않은지, 어떤 이는 자신의 권력으로 아무 의미도 없는 전쟁에 기어코 자신의 젊은이들을 내몰더니 그들의 피가 자신의 얼굴까지 튀어도 그만둘 줄을 모른다. 다른 이는 한 여인의 젖가슴을 자기 것인양 주물러대고서는 ‘술이 죄지 사람이 죄냐’며 국회의원의 자리를 가늘고 길게도 지켜나간다.


어떤 양반들은 돈과 여자에 자유롭지 않으면서도, 그들이 버릇처럼 오르는 강대상이 만백성의 고민을 짊어진 하나님의 자리인 줄도 모른다. 왜 그들은 포기를 모르는 것일까? ‘또순여사’의 렌즈에 비춰보니, 아직도 자신보다 더 값진 무엇인가를 찾아내지 못하는 탓이다.


두렵다면 이제 그 피할 수 없는 포기가 나의 차례가 되었다. 더 무섭게는, 남을 위해 포기했던 걸 돌려받기는 항상 또순여사의 부메랑 같은 카메라 같지 않다는 사실이다. ‘또순여사’  이야기에 잠시 감동하여 외출했던 나의 이성은, 어느새 돌아와 그녀가 얼마나 힘든 선택을 했는지 말해 주었다.


아울러 이 이야기는 당분간 아내에게 비밀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까지도. 가정을 위해 당신도 카메라를 버릴 생각은 없냐는 으름장을 견뎌낼 재간이 없는 탓이다. 타인의 희생에 숨는 비겁한 나. 모질고 역겨운 시대에 적당히 살아남는 법을 배운 비위 좋은 나. 그런 나의 눈에, 자신 아닌 다른 사람을 더 가치있게 여기고자 예수는 십자가 전날 밤까지 땀이 피가 되도록 그리 애쓴다.


영국의 한 기관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남성들이 겪는 두 번째의 스트레스가 여성과 함께 하는 쇼핑이라고 한다. 첫 번째는 전쟁이라나. 삶과 죽음을 오가는 지옥 같은 경험 외에는 자신의 이혼이나 부모의 죽음마저도 여성과 함께하는 쇼핑의 스트레스보다 덜하다니 영국남성들의 엄살도 어지간하다.


하지만, 국적과 인종을 초월하여 쇼핑몰에서 여성의 빠른 발을 당해낼 남성은 없으며, 그곳의 벤치(남성전용의자)에 패잔병처럼 널브러져 있는 코쟁이 신사들과 뒤섞여 남성들만의 의미심장한 눈빛 교환을 할 때면, 꼭 그것이 꾀병으로만 치부될 일은 아닌 듯하다. 


더 나이 들어, 소멸되어가는 남성호르몬을 중년의 온화함으로 위장한 채 아내의 훌륭한 쇼핑 파트너 노릇을 하고 있을라치면 아내는 그것도 내 희생으로 인정해 주려나 모르겠다. 그저 ‘또순여사’처럼 운이 좋기를 바라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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