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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는 지금은 내륙이지만 번성했던 당시에는 베수비오 화산의 남동쪽을 흐르는 '사루느스'라는 이름을 가진 강의 하구에 위치한 커다란 항구도시였다고 합니다. 제정로마 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한 폼페이는 당시의 인구가 2만~5만가량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큰 규모의 고대도시였으나 서기 79년에 베수비오화산의 대폭발로 시가지와 부근 모두가 2~3M의 화산재로 덮혀버렸고, 이로 인해 최소 2천명에서 최대 4천명 가량의 인명피해를 낸 대참사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16세가 말부터 복원이 시작되어 현재 절반 가량이 복원되었다고 합니다만 커다란 돌로 멋지게 포장된 도로, 지금까지도 그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상수도와 거리마다에 설치되어 있는 식수대, 공중목욕탕, 원형경기장 등등... 그 규모와 화려하기가 대단하더군요. 2천년 전에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를 건설하고 번성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멋진 곳이었습니다. 복원 과정에서 화산재더미의 내부에 공간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거기에 석고를 채워 굳힌 다음 모습을 확인해 보니 모두 사람들이 화산재와 열기를 피해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유적지에서는 그런 모형을 그대로 잘 보관하고 있었습니다만, 전 도저히 케메라를 들이댈 자신이 없어 눈으로 바라만 보고 돌아왔습니다. 화산폭발의 대참사만 아니었다면 지금은 그 아름다움을 더욱 뽐내고 있었을 듯 싶더군요. 사진은, 별 설명없이 돌아본 순서대로 몇 장 올라갑니다.... 윗 사진은 유적지를 찾아가던 중 버스 안에서 담아본 '베수비오화산'의 모습입니다. 



입장권을 구입하면서 바라본 유적지 입구의 모습, 커다란 돌로 깔끔하게 포장된 도로와 인도와 차도가 분리되어 있는 입구가 보입니다.




'바실리카'라는 이름을 가진 폼페이의 재판소와 상공회의소로 쓰이던 곳, 폼페이에서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건물이라고 합니다만, 지금은 벽 일부와 기둥만 남아 있습니다.




 





중앙광장인 포로(Foro, 영어로 Forum)의 모습, 폼페이의 만남의 장소, 정치와 상업의 중심지였다고 합니다.




오른쪽으로 멀리 '베수비오화산'이 보입니다. 저 화산이 분출을 시작하면서 이곳의 비극이 시작되었다는 얘기지요.




중앙광장 Foro에서 베수비오화산을 바라보면서 유적지 안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만나게 되는 '주피터신전'의 모습입니다.




폼페이의 시가지 도로의 모습, 2천년전에 포장된 도로가 지금까지도 깨끗합니다. 로터리도 있고, 로터리마다 비가 많이 올 때를 감안한 징검다리 모양의 횡단보도도 보입니다.징검다리는 마차가 다닐 수 있도록 간격을 절묘하게 배치했더군요. 도로의 경사진 곳에는 좌우로 마차가 다니며 생긴 움푹 파인 바퀴자국이 선명했는데... 그만 촬영할 생각을 못했습니다.




폼페이에서 가장 유명한 상인의 저택이었다는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질 않습니다.




 





폼페이 원형경기장입니다. 사진 오른쪽으로 검투사들의 처소가 있는데, 저희가 다녀간 다음날 비가 많이 오면서 일부가 무너졌다고 이탈리아 뉴스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하더군요.




원형경기장을 돌아 나오던 길에...  




 





유적지를 한바퀴 돌아 밖으로 나왔습니다.

여기저기를 살펴보면서 당시 폼페이가 얼마나 번성했던가를 알 수 있는 모습들이 참 많았습니다만 그런 모습들을 모두 사진으로 담지 못해 아쉬움이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