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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식사 중 CBS뉴스에 김용화 영화감독의 인터뷰가 나왔다.
실제 15년동안이나 국가대표 선수 생활-더 하려는 사람이 없어서-을 하는 선수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선수들에게 뭔가 격려와 힘을 실어주고 싶었고, 성공하는 스포츠 영화 없다는 게 영화계의 정설이라지만 인상 깊은 영화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국가대표'를 만들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실제 이렇게 많은 관람객이 이 영화를 보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하였다.

응원의 마음을 담아 미소를 보냈다.
김용화 감독은 올해 나이 서른 아홉이다.
대학 시절 병환으로 누워 계신 어머니를 위해 생선좌판으로 돈을 벌며 대학 생활을 할 정도였고, 그룹사운드를 만들어 보컬을 맡는 등 뜨거운 이십대를 보낸 만만치 않은 이력을 가진 감독이다.

'국가대표' 영화가 개봉되던 날, 작은 딸 정은이와 대전 가오동 롯데 시네마에 갔다. 개봉 첫날이었지만 극장 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입장하였다. 지금 생각해도 영화가 종영될 때까지 잠시도 풀지 못했던 긴장감과 스릴, 감동과 웃음, 그리고 눈물..... 잊을 수 없다.
영화가 끝나고 사람들 속에 묻혀 출구로 밀려 나오는데 실제 강칠구 선수의 부모님을 만나게 되었다.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주, 그것도 설천에서 대전까지 나온다는 것은 큰 마음을 먹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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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안녕하세요?


영화 보러 나오셨어요?"
"네!! 소장님도 영화보러 오셨네요?"
"네..... 아니 강칠구선수 부모님 정도되면 영화 시연회에 초대되어 근사한 곳에서 영화 감독과 관계자들과 배우들과 함께 봐야하는 거 아닌가요? 정말 국가대표 선수의 부모님이신데....."
웃으며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아뇨... 그런 거 없어요." 하시며 부끄러워하신다.

나도 영화가 개봉될 때만 해도 지금처럼 이 영화가 주목받을 거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나름 스토리 구성이나 배우들의 진지하고 열정적인 연기력, 익숙한 무주 풍경과 무주리조트 풍경, 적상과 설천, 진안 모래재 등.... 너무나 익숙한 촬영 배경이 영화에 나오니 나로서는 영화라기보다는 오히려 친근한 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오는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었다.

영화보는 내내, 특히 후반부의 국제 스키점프대회 경기 장면에서는 정말 우리나라 영화 기술이 많이 발전했구나라는 생각을 가지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실제 경기장과 거의 똑같은 컴퓨터 그래픽 처리는 경기장에서 실제 촬영한 것 같은 생생한 현장 느낌 그대로를 전달해주었다. 영화적 스토리 구성을 위해 실제 선수들 생활보다 다소 과장되거나 짜맞춰진 면도 없잖아 있었다고 하였지만 실제 배우 김용건의 아들이라는 하정우 배우의 연기력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무주리조트 건설 첫 삽을 떴던 1989년 9월, 나는 그 해 10월 1일자로 구천보건진료소에 발령 받았다.
깊은 숲에 스키 코스 개발을 위해 벌목작업하다가 현장에서 다친 인부들, 전기톱이며 날카로운 도구에 다쳐 오는 인부들, 벌쏘임, 옻나무로 생긴 접촉성피부염 등 진료소를 통해 공사 현장 인부들도 적지 않게 찾아왔고, 임상과 보건진료소 근무 경험이 없던 나로서는 매일 진료소 문을 열때마다 늘 긴장의 나날이었던 기억이 새롭다.
서울, 부산, 대구 등 고향을 떠나 무주 골짜기에 와 쉬는 날도 없이 컨테이너 기숙사에서 근무하던 당시 '쌍방울개발' 직원들과는 오랜 친분으로 여름 오후엔 시원한 계곡에서 캔맥주를 마시거나 삼계탕을 해먹기도 했었는데....



실제 최흥철 선수는 1981년생이다. 그때 당시에는 아홉살이었다.
엄마와 아버지는 삼공리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셨고, 막내인 흥철이는 누나와 형과 할머니와 주로 생활하였다. 흥철이는 평소 별로 말이 없었고, 감기에 걸려 열이 나거나 기침이 심할 때 할머니 등에 엎혀 자주 진료소를 찾아오곤 했었는데......



무주리조트가 개장하면서 흥철이 누나 최송화는 스키 종목의 마라톤이라는 바이에슬론 종목에서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활약하면서 고려대학교에 진학, 지금은 캐나다 유학중이다. 흥철이는 스키점프라는 종목으로 일본이며 독일 등 해외전지훈련이 많아지면서 출국이 잦아졌고 그후 한국체육대학교에 진학하였다.

1996년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유치를 위해 급히 건설된 스키점프 대와 급히 조성된 스키점프 선수단!! 당시 누나와 흥철이 선수 생활 뒷바라지를 위해 헌신하던 부모님의 경제적 부담은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것을 기억한다. 이제는 명실상부한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하는 흥철이를 실제 삼공리보다는 TV에서 보게 되는 일이 많아졌고, 스포츠 뉴스 시간이나 신문을 통해 기사를 읽으면 흥철이 아버지께 전화를 걸어 기쁨과 축하의 인사를 나누곤 하였다. 
 


영화가 대박났다고 그토록 열악한 선수들의 훈련 여건이나 시설이 금새 좋아지거나 스폰서가 생길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열악한 환경은 그대로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흥철이는 대한민국이 알아주지 않던 아니, 알지 못했던 '스키 점프' 국가대표 선수라는 것을 영화를 통해 알리게 되었고, '대한민국'이라는 큰 나라를 등에 엎고, 이전에도 늘 그래왔던 것처럼 오늘도 변함없이 푸른 저 하늘을 무대삼아 훨훨 날고 있을 것이다.


 2010년 독일 벤쿠버 올림픽 화이팅!!

흥철이 화이팅!

국가대표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