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읽기는 했는데 ...
기호학자 로랑바르트의 책은 다른 책도 본적이 있지만, 다 읽고 나면, 내용은 기억이 안나고, 심상만 남습니다.
그냥 느낌 ... 그래서 그걸 다시 풀어 쓰라면 .. 참 우울해 집니다.
그래서 ... 역자 후기로 대체합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은 한번 읽어보세요. 후기를 읽는 것 조차 ..쉽지는 않습니다.. 생소한 단어들이 많아서 ...
기호학자들은. .. 쉽게 말하면 보통 문자, 심볼, 문장을 통해 유추되는 이미지, 의미들을 분석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도 표현하는 방식이 그렇게 되나 봅니다. 어떤때는 너무 자세하고,어떤때는 너무 추상적이고 ...
그런 과정을 거쳐 .. 독자들에게 글로써 그림을 전달합니다. 그러다보니.. 읽기가 더 힘들죠 ..
또 단어 선택에 있어서도 .. 아주 정확한 자신의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찾아서 골라서 씁니다. 그러다보니
라틴어, 희랍어..영어, 불어, 독어를 ..마구 섞어 놓습니다.. 나쁜 인간들이죠 .. ㅎㅎ ..
책은 2부로 구성됩니다. 1부에서는 그냥 쭉 사진이 무엇이다... 생각을 나열해 놓고는..
마지막에 ... "미안타 이산 이 아닌게벼" 그럽니다 ... ㅎㅎ ... 그리고 다시 2부에서 처음부터 다시 접근을 합니다.
1부를 ,2부의 결론을 정의하기 위해 꼭 있어야 할 과정 또는 오류라고 생각했던 듯 합니다.
전 2부의 평범한 결론보다는 1부의 접근이나 결론이 더 마음에 들더군요 .. 아직 성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꼭 관심이 있는 분만 읽어보세요 .. ㅎㅎ ...
안그럼 .. 욕나옴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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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는 바르트가 <카이에 뒤 시네마>지의 요청과 어머니의 타계를
계기로 사진에 대해 펼쳐낸 단상들을 일관된 구도에 따라 담아내고
있다. 현대인은 이미지의 가공할 무차별적 융단 공격에 노출되어 있다.
이미지가 소비의 대상이 되어 범람하는 이 시대에 기호학자 바르트의
사진론은 사진계에 이미 종요한 고전처럼 현실적 위상을 확보하고 있다.
사진에 대한 바르트의 분석은 일정한 한계를 전제하고 있다. 몇가지
예를 든다면 첫번째로 그것은 '촬영자'의 입장을 거의 배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사진가를 다분히 환원적이고 '도구적' 역할로 축소시키고
있다. 저자가 선택한 관점은 '구경꾼', 다시말해 사진의 이미지를
바라보는 자의 것이기 때문에 '전문가'와 '아마추어'사이의 갈등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두번째로 그는 사진의 본질을 공적인 사진
들보다는 사적인 사진들에서 찾고 있을 뿐 아니라 이미지의 변형이나
창조를 '기만'의 차원에 위치시킴으로써 논란의 불씨를 내재시켜 놓고
있다. 세번째로 바르트는 자신의 개인적인 비극사, 즉 어머니의 죽음을
중심으로 사진의 본질을 논구함으로써 사진을 사라진 존재, 즉
"그것은 존재했다"는 과거 현실과의 관계, 혹은 시간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사진가의 창조적 측면은 거의 도외시하고 있다, 그렇게 때문에
어느면에서 본서는 사라진 존재와 관련된 부재의 슬픔과 부활의 시도를
담아낸 '사랑의 텍스트'라 규정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서에서 독자는 바르트의 대가다운 지적 통찰을
풍요롭게 만날 수 있다. 그는 "실존적으로 결코 다시 반복될 수 없는
것을 기계적으로 되풀이해 보여주는 "사진이 '고유한 정수(精髓),'
곧 본질을 지니고 있는지, 특징상 그것은 다른 '이미지 집단'과 어떻게
구분되는지 이해하기 위해 그 어떠한 학문적, 언어적 담론으로부터도
벗어나 사진의 대상, 인물로부터, '나를 위해' 존재하는 사진들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나'에게 오는 주관적. 정서적 감동을
검토하기 위해 다소 현상학적 방법을 빌리고 있음을 밝힌다.
바르트는 사진을 '촬영자'(사진작가), '구경꾼'(사진을 바라보는 자),
'유령'(사진 찍힌 대상이 발산하는 환영적 이미지)의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그는 자신이 사진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첫번째는
배제하고 나머지 두 관점, 특히 구경꾼의 관점에서 논지를 전개하면서
사진을 "나는 좋아한다(I Like)/나는 사랑한다(I Love)"와 같은 정서의
차원에서 검토한다. 그러니까 그는 사진이 어떻게 감정을 폭발시키는지
이해하고자 시도한다. 이로부터 나온 두 개념이 '스투디움(Studim)'과
'푼크튬(Punctum)'이다. 전자가 '나는 좋아한다'와 연결된다면
후자는 '나는 사랑한다'와 연결되면서 둘은 강밀도와 질적 차이를
나타낸다. 전자가 사진에서 교양적으로 정보, 재현, 놀라움, 부러움의
감정을 일으킨다면 후자는 나를 정신적으로 찌르고, 상처를 주며,
타박상을 입힌다. 사진에서 감정을 촉발시키는 이런 두 특징적 요소/개념
들에 연극과 접근되는 죽음의 직관이 덧붙여진다.
이어서 바르트는 스투디움이 표현되는 여러 양상을 고찰하고, 푼크툼이
없는 '단일 사진'들을 중심으로 사진이 주는 여러 놀라움들, 우연과
마스크가 각인된 사진의 의미와 사유 축발의 문제, 정신분석학적으로
어머니의 육체와 결합되는 풍경 사진들을 다룬다. 또 그는 스투디움=푼크툼의
관계에서 구경꾼과 사진작가의 역할을 보다 심층적으로 조명하고 푼크툼을
위한 침묵을 영화를 끌여들여 언급한다. 결국 푼크툼은 스투디움적인
포르노의 욕망을 넘어선 에로티시즘의 욕망이 위치하는 차원에서
자리잡는다.
그라나, 바르트는 이와 같은 욕망의 차원에서 스투디움과 푼크툼이라는
두 개념을 중심으로 펼쳐진 사진론이 결국 피상적이라고 결론짓고 '취소의변'을
늘어놓는다. 이상이 본서의 제 I부를 구성하며, 제 II부부터 저자는 자신의
어머니 사진을 출발점으로 삼아 사진의 본질을 향한 새로운 탐험의
여정을 떠난다.
바르트는 사진의 본질을 발견하는 과정을 타계한 어머니의 사진들을
정리하는 작업에서 시작하여 마침내 어머니의 어린 시절 사진인 <온실 사진>
에서 이 본질과 마주한다. 그리하여, 그는 사진 인물의 환원 불가능성,
'그것은-존재-했음', 시간에 관한 확인으로서 사진의 의미, 시간의 정지,
사진의 죽음, 사진에서 닮음과 분위기와 같은 테마들을 유기적으로
엮어 전개하면서 사진의 본질을 주조해 낸다. 결국 진정한 사진은 한편으로
"그것은 존재했다"라는 노에마의 현실과, 다른 한편으로 부동의 영혼을
담아내는 분위기를 나타내는 "바로 이것이다"의 사토리 같은 진실을
결합하는 것으로 정리한다.
바르트는 결론으로 사진의 본질과 광기의 관계를 다른다. 영매로서,
새로운 환각의 형태로서 사진은 '현실의 문질러진 광적인 이미지'로
다가오며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이런 광기를 다스리기 위해 사회는
한편으로 사진을 예술로 만들고, 다른 한편으로 그것을 일반화, 평범화
시키고 증식시켜 군서적으로 만든다.
이미지의 폭주속에 광기를 잠재우는 것이다. 사진은 그것의 사실주의가 절대적인가
상대적인가에 따라 광기 혹은 현명함의 두 갈래 길로 유도한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역자가 간단하게 제시한 대략적 윤곽은 바르트의 사유가 지닌 깊은
울림을 담아내는 게 아니다. 그것은 다만 독자에 대한 역자의 기본적
도리로서 제시된 것에 불과하다. 분량이 많지 않은 이책을 단숨에 읽어
바르트와의 직접적이 만남의 장을 갖는게 바람직하다고 분다.
늘 새로운 것을 찾아 지적 모험을 끊임없이 떠났던 바르트가 생을
마감하기 전에 내놓은 마지막 작품이<<밝은 방>>이다. 괘락주의자적인
면모가 강했고, 텍스트의 '즐거움'과 '즐김'의 마야(환상)놀이를 통해
유물론자의 위상을 드러냈던 바르트에게 가장 사랑했던 어머니의 죽음,
상실의 아픔속에서는 마야의 놀이도 더 이상 의미가 없는가 보다.
--- 하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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