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그 자연 속에 취하다
글/사진 박동철
새벽녘의 맑고 차가운 강원도의 산 공기는 오아시스와 같이 시원함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켜준다. 더욱이 간밤에 내린 비 때문에 한층 더 싱그럽고 상큼하기만 하다. 진부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월정사 방면으로 20여분을 달리면 오대산 국립공원을 알리는 탐방센터가 보인다.
차창을 열어 초록의 숲 향기에 한껏 취해본다. 커다란 아름드리 전나무가 짙은 녹음을 뽐내며 사방을 빼곡히 둘러싸고 있는 도로를 미끄러지듯 빠져나가다 보면 차에서 내려 숲이 내뿜는 공기에 취해 느긋하게 걸어 보고픈 마음이 샘솟는다. 주변 공사가 한창인 월정사를 지나면 포장도로가 끝나고 흙길이 시작된다. 시냇물 소리만 졸졸졸 들려오는 고요한 아침, 지저귀는 새소리가 마치 음악처럼 들여오는 이 길은 동피골 야영장을 지나는 길이고, 오대산 호령봉에서 동대봉까지 이르는 등산로로 들어서는 초입이기도 한데, 월정사의 말사인 상원사까지 도로는 이어진다. 무려 해발 1200m의 높은 곳에 지어진 상원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절로도 유명하다. 신라 문무왕 때 지어진 절이니 1400년이나 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지만, 사실 6.25 때 모두 불타버리고 1968년도에 다시 지어졌다고 하니 안타깝고 아쉽기만 하다. 안개가 산자락을 휘감아 돌아나가는 상원사의 고즈넉한 풍경을 카메라에 담기위해 대웅전 뒤 쪽의 능선에 오르기로 하고 무릎정도까지 자라난 풀을 헤쳐 나간다. 아침 안개 때문일까? 지난 밤 내린 비 때문일까 초록의 풀숲은 한껏 물을 머금고 있어 이삼십 미터를 걸었는데도 바지며 신발이 물속을 거닌 것처럼 푹 젖어 버렸다. 하지만 해가 뜨기 직전의 그 황홀한 풍경은 그 마저도 잊어버리게 하고야 만다. 지금은 일반인들이 가까이 접근할 수 없도록 보관되어져 있는 상원사 동종 또한 이곳에서 빼놓지 말고 보아야 할 것 중 하나인데, 성덕대왕 신종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종이기도 하다. 무릎을 꿇고 하늘을 날면서 악기를 연주하는 비천상(飛天像)을 보고 있으면 마치 신선이 된듯한 착각이 일기도 한다.
상원사에서 등산로로 접어들어 차갑게 흐르는 계곡 사이 크고 작은 바위를 푸른 이끼가 두텁게 감싸는 풍경과 함께하며 30분가량 숲길을 오르면 기와가 층층이 계단을 이루고 있는 중대 사자암을 만나게 된다. 다시 이곳에서 15분을 오르면 불상이 없는 암자가 나타나는데, 바로 ‘적멸보궁’이다. 신라의 승려 자장(慈藏)이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가져온 부처의 진신 사리와 정골(頂骨)을 나누어 봉안한 곳을 적멸보궁이 이라 하는데, 양산 통도사, 오대산 중대, 설악산 봉정암, 태백산 정암사, 사자산 법흥사가 바로 우리나라의 5대 적멸보궁이다.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와 주변에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친근하게 재롱을 피우는 다람쥐는 자연과 하나임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호기심에 다람쥐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더니 깡총하고 그 위로 뛰어 올라 오히려 내가 흠칫 놀라기까지 하였으니 말이다. 오대산은 유난히 다람쥐가 많기도 하지만 해코지 하는 사람들이 없어서인지 사람들에게 경계심을 풀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과자 하나를 널찍한 바위에 올려놓고 기다리니 어느새 다람쥐 몇 마리가 뛰어와 내 눈앞에서 식사를 즐긴다.
상원사를 내려와 영서지방의 대표고찰인 월정사로 들어선다. 일주문에서부터 시작되는 전나무숲길은 하늘위로 쭉쭉 뻗어 올라 그 기세가 늠름하고 시원스럽다. 신을 벋고 1km 에 이르는 전나무 숲길을 맨발로 거닐면 발바닥으로 전해오는 땅의 기운이 지친 발을 편안하게 만져주어 마음의 여유와 함께 상쾌함을 안겨준다. 말다툼하고 토라졌던 연인들의 마음도 함께 걸으면 봄눈 녹듯 사르르 녹여버릴 것 같은 아름다운 길이다. 국보 제 48호의 월정사 8각 9층 석탑이 경내의 한 가운데를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월정사는 성보박물관과 윤장대 등 볼거리가 많아 찾는 이들이 끊이지 않는 절이기도 하다.
사진을 좋아하는 이라면 월정사 들머리에 자리 잡은 ‘한국자생식물원’도 한번 쯤 찾아볼만 하다. 예전엔 산과 들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식물들이지만 마구잡이로 파헤쳐지고 뽑혀져 지금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식물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은 곳인데 다양한 행사를 하는 이벤트관까지 있어서 사진을 찍고 구경을 하다보면 시간이 언제 이렇게 되었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지나간다. 특히 1.2km의 신갈나무 숲길과 생태 식물원은 마치 숲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만든다. 하지만 식물원을 찾는 이들 중에서 간혹 실망을 하고 돌아가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화원을 상상하고 찾는 경우일 것이다. 자연 속에서 철마다 피고 지는 멸종위기의 희귀한 꽃과 식물들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매력을 느낀다면 입장료와 시간이 아깝지 않을 것이다.
오대산 국립공원은 남북을 가로지르는 6번 국도를 사이에 두고 서쪽으로 오대산지역, 동쪽으로는 소금강 지역으로 크게 구분한다. 한국자생식물원을 빠져나와 주문진 방면으로 난 6번 국도를 타고 소금강으로 차를 몰아 해발 960미터의 진고개 정상에 다다를 때 쯤 불과 10미터 앞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을 만큼 짙은 안개가 사방을 뒤덮고 있다. 구름 속을 헤매는 듯한 느낌? 진고개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그 구름을 음미해본다. 차갑고 습한 공기가 얼굴에 부닥치는 느낌이 과히 나쁘지 않다. 진고개 정상에서 시작되는 등산로는 해발 1338m의 노인봉에 이르는 가장 쉬운 등산코스인데, 노인봉을 거쳐 오대산의 비경인 소금강을 하산하며 감상할 수 있어 많은 이들이 찾는 코스이기도 하다. 금강산의 축소판이라 불리는 소금강은 기암괴석 사이로 흐르는 맑은 계곡 물과 웅장한 폭포, 울창한 숲으로 발길이 닿는 곳마다 관광객과 등산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꼭 등산이 목적이 아니라면 오대산국립공원 소금강분소로부터 시작되는 소금강 탐방코스를 선택하는 것도 좋다. 외국 유명 관광지의 트래킹코스에 전혀 뒤지지 않는 멋지고 아름다운 트래킹이 될 것이다.
계곡 초입의 십자소를 지나면 연이어 연화담이 나오고 철제 계단과 계곡 사이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몇 개 건너다보면 이끼 낀 돌담이 고풍스런 아름다움을 빚어내는 금강사를 만나게 된다. 소금강에 걸 맞는 절 이름이다. 소금강에는 깎아지른 듯 웅장한 바위절벽 틈 사이로 곧게 자라난 붉은 소나무들이 유독 눈에 많이 띄는데, 언뜻 보기에도 그 생김새가 심상치 않다. 우리나라의 대부분 소나무는 이리 꼬이고 저리 꼬이면서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데, 이곳의 소나무는 곧기가 마치 대나무를 연상케 하며, 껍질도 매끄러우면서 위로 올라갈수록 붉은 기운을 보이기 때문이다. 어떤 나무는 바위 위에 떡 하나 걸터앉은 듯 뿌리로 바위를 온통 감싸고 있어 기이하기까지 하다. 바로 적송(赤松)이다. 일명 금강송으로도 불리는 이 소나무는 곧고, 굵기 또한 한 아름 씩 되기 때문에 예전엔 궁궐을 짓는 데 주로 사용되어졌다고 하니 역시 대단한 소나무임에 틀림이 없다. 트래킹을 시작한 지 한 시간 정도가 되었을까? 드디어 엄청난 물소리와 함께 불어오는 시원한 기운이 느껴진다. 아홉 마리 용이 폭포 하나씩을 차지하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구룡폭포의 물보라는 트래킹을 하면서 흘렸던 땀방울을 이내 서늘하게 식혀준다. 30여분을 더 오르면 자연석의 화강암이 여러 가지 다채로운 풍경을 자아내는 소금강의 하이라이트 만물상이다. 소금강 분소로부터 약 3.5km 정도 거리니 왕복 세 시간 정도면 충분한 거리. 가족, 혹은 연인 끼리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편안하게 다녀올 수 있는 길이니 꼭 한번 다녀오도록 하자.
월정사 찾아 가는 길 ◎ 대중 교통 동서울터미널에서 3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진부행 시외버스 이용, 진부역에서 하차. 월정사를 경유하여 상원사까지 1일 4회 버스가 운행된다. ◎ 자가 교통 영동고속도로 진부IC → 오대산 방향 6번 국도(4.4km) → 월정 3거리(월정주유소)에서 좌회전 → 8.4km 직진하면 월정사 → 8.3km 직진하면 상원사 소금강 찾아 가는 길 ◎ 대중 교통 강릉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소금강을 오가는 303번 노선버스를 이용(40분 소요) ◎ 자가 교통 영동고속도로 진부IC → 오대산 방향 6번 국도(4.4km) → 월정 3거리(월정주유소)에서 좌회전 → 4.2km → 병안삼거리에서 우회전 → 23km → 소금강 삼거리에서 우회전 → 3km 직진하면 소금강
전나무 소나무 등 각종 아름드리나무들이 토해내는 오대산의 맑고 상쾌한 공기와 피톤치드 덕분일까? 이른 새벽부터 하루 종일 걷고 또 산을 올랐지만 기분과 몸은 피로한 줄을 모고 오히려 가뿐하기까지 하다. 꼭 트래킹을 하고 힘들게 산을 오르지 않아도 좋다. 그냥 가만히 앉아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자연 속에서 마음을 비우는 여유를 찾는 것은 내 마음을 살찌우는 보약과도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바다보다 더 시원하고 활력이 넘치는 오대산에서 도시생활의 스트레스를 확 날려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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