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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터키와 한국이 수교를 맺은지 50년이 훌쩍 넘었다. 재터 한인회에서 그동안 잊고 살았던 우리들의 영웅들을 찾아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 한국 전쟁에 참전했던 용사들 중 한 분이신 '슐레이만' 할아버지 집을 찾아갔다.
'슐레이만' 할아버지께서는 한국 사람들이 방문한다는 소식을 들으신 후 거실의 창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 어귀를 내려다보면서 기다리고 계셨다.
'슐레이만' 할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셨다. 어느덧 83세가 되셨지만, 한국 전쟁에 참전하셔서 싸웠던 젊은 날의 기억은 생생했다. 1951년 25세의 나이로 한국 전에 소위로 참전하여, 군우리 전투에서 4천 5백 명의 병력으로 3만 명의 중공군을 맞아서 싸우셨다고 한다. 군우리 전투에서 4천 5백 명의 병력을 삼등분하여 1/3의 병력이 중공군이 남하해 오는 것을 3일 동안 막으며 버틸 동안 미군과 한국 해병대 그리고 피난민들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때 당시 중공군은 인해전술이었다고 한다. 3만 명의 병력을 일렬로 세워 제일 앞줄에 선 중공군 병사들에게만 총을 지급하였고, 다음 줄 부터는 실탄만 지금했다고 한다. 그래서 제일 앞 줄에 선 병사가 죽으면 다음 줄에 있는 병사가 그 죽은 병사의 총을 갖고 싸우고, 또 그 다음에, 또 그다음에.....
계속 같은 방법으로..... 인해전술 그 자체였다고 회상하며 말씀하셨다.
재터 한인회 회장님을 비롯하여 '슐레이만' 할아버지 집을 방문했던 교민들은 당시의 상황을 들으면서 숙연해 질 수 밖에 없었다. 한국 동란에 일 년 정도 참전하였지만, 요즘에도 일년에 2~3회는 너무나 생생하게 전쟁의 악몽을 꾼다고 말씀하셨다.
'슐레이만' 할아버지는 지금도 한국을 그리워하시며 살고 계신다. 소원이 어떤 것이 있냐고 여쭤보자, '슐레이만' 할아버지께서는 죽기 전에 한국을 꼭 한 번 방문해 보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그 이유는 제일 친한 친구가 한국 전쟁에 함께 참전했다가 전사하여 부산 UN 묘지에 묻혀 있는데 다시 한 번 방문해 보고 싶고, 전쟁의 폐허를 딛고 발전한 대한민국을 직접 보고 싶다고 하셨다. '슐레이만' 할아버지께서는 지금도 T.V에서 한국 드라마, 영화, 뉴스 등의 프로그램이 방영되면 밤을 세우시며 끝까지 시청 하시고 계신다. 한국 동란의 참상을 직접 보고 겪으신 할아버지께서는 대한민국이 독립국가로 오늘날과 같이 발전하리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고 하셨다.
한국 전쟁에 참전했던 터키군의 인명 손실은 미군, 영국군 다음으로 세 번째로 전사 741명, 부상 2,068명, 실종 및 포로 407명 등 총 3,216명이었다.한국 전쟁에 참전했던 만 오천명의 우리들이 영웅들은 이미 많은 분들이 한국을 그리워하며 살다가 하늘나라로 떠나셨으며, 얼마 남지 않은 우리들이 영웅들께서는 어느덧 인생의 황혼을 보내고 계신다. 한국 사람들보다 한국을 더 그리워하며 살고 계신 '슐레이만' 할아버지의 소원인 한국 방문이 이루어졌으면 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