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조부 고 정 용선에 명예회복을 하고 싶습니다. 도움을 주시기 바랍니다.
사망기록:제정호적에 소화3년5월20일 오후3시20분 경성형무소 감방(서기1928년5월20일오후3시20분사망)형무소에소 통지하여 호적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는 국가유공자의 한사람으로 있는 고 정 용선 옹의 증손자입니다.
자나깨나 증조부님의 명예를 회복하려고 지난 30여년 세월을 자료를 찾아 전국을 헤메며 다니고 있습니다. 젊음을 국가와 민족의 독립과 광복을 위하여 받치신 증조부의 명예를 회복하여 자손된 도리를 다하고 싶습니다.
분명히 경성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사망한 기록이 제적등본에 자세하고도 세세히 기록되어 있는데도 국가보훈처에서는 또다른 자료를 요구하는 것에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경형형무소가 6.25사변에 불이 나서 소실된것이 왜 가족들에 책임입니까? 그자료를 제대로 관라하지 못한 정부의 책임이 분명한데도 말입니다.
힘없는 가족에게 자료를 요구하지 말고 국가보훈처에서 자료발굴 노력을 경주하여 진정한 독립유공자를 발굴하려는 노력을 기울려 주시기 바랍니다. 주위에 저의 증조부 관련 자료가 있다면 도움을 주시기 바랍니다. 민원을 제기한 가족에 입장에서 한번 생각보시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가족들은 긴세월동안 많은 풍지평파와 고난의 세월을 살아왔음을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많은 애국지사와 애국선열들이 흘림 피의 댓가와 노력으로 오늘에 대한민국의 발전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혹시 봉화군민 여러분께서는 혹시 경성형무소인 현재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보셨는지요. 그자리가 악명 높다던 경성형무소입니다. 저의 증조부께서 바로 그자리에서 생을 마감하신 자리이기에 일년에 몇번 그곳을 찾습니다. 증손자인 저의 가슴이 미어 터지는것 같고 분통이 터집니다. 가슴이 답답한 심정입니다.
정부나 국가보훈처에서 하는 "독립유공자 후손찾기" 구호만 요란스럽게 해서는 안돼 관련 호적 (제적등본) 내용 살펴 힘없고 빽없고 줄없는 가족 발굴해야 바람직 국가보훈처는 찾는 노력 하지 않고 가족들에게 짐 떠넘기는 형상 언제까지 하려나... 가족들이 제출하는 관련 서류 제대로 보지도 않고 묵살 하는것 같아 안타깝다. 제부모 제조상 같으면 이렇게 하려나 싶은 심정이다. 앞으로 세심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것 같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받친 고 정용선 증조부 명예를 회복시켜 주세요.
지금까지 30 여년째 증손자가 노력하고 있답니다. 제발 귀를 기울려 주셨으면 합니다. 남의 일로만 생각지 마시고 관심가져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증손자도 국가를 위해 희생한 국가유공자랍니다.
저는 저의 증조부(고 정용선)독립운동에 대한 자료발굴과 명예를 회복하기 위하여 20여년을 노력해 왔습니다만 아직까지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정호적원부에 수형기록과 사망기록이 있슴에도 판결문을 찿지 못하여 인정받지 못하고 있어 정부의 결단이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희 부친은 문맹인으로 살고 계시며 평생 어렵게 할아버지도 일찍 일제피박에 돌아 가시고 고아 아닌 고아로 어렵게 성장하여 오늘에 이르신 분이십니다.
이미 저의 증보부자료에 대해서는 국가보훈처에 제출한지 오래이며 민족의 비극인 6.25사변 으로 인하여 경성형무소가 소실되고 지방에 본적지 면사무소가 소실되어 더이상의 자료를 수집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번에 각하의 따뜻한 관심이 애타게 조상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후손들에게 큰힘이 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자세한 자료는 국가보훈처 자료관리과 또는 선양과에 있습니다. 좋은 소식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독립유공자 후손 시혜적 보훈정책 구조적 원인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가난 대물림과 배움기회 박탈, 또 계층 하락은 거꾸로 간 역사의 구조적 잘못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독립유공자들에 대한 진정한 예우 차원이 아닌 시혜 차원에서 도입된 보훈정책도 가난·무지의 대물림을 고착화시켰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증조부(정용선)의 호적 주소는
성명:정용선 (다른 이름으로는 재열, 차용이라고도 불리어 졌다고 합니다.
출생년월일:서기1883년12월17일생(명치16년12월17일생)
본젹지:경북 봉화군 춘양면 도심리 391번지
거주지:대정3년 충청북도 청주군 양성면 도원리3통1호
대정4년 경북 봉화군 법전면 풍정리7통10호
경북 봉화군 법전면 법전리 1062번지
전국을 무대로 독립운동(독립자금 군자금)을 담당 하였다고 함
사망기록:제정호적에 소화3년5월20일 오후3시20분 경성형무소 감방(서기1928년5월20일오후3시20분사망)형무소에소 통지하여 호적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꼭 저의 증조부에 대한 기록을 찿을 수 있게 관심을 가져 주시고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이모든것을 정부가 마땅히 해야 옳은것 같은데 가족에게만 자료를 요구하는 것은 부당한 생각이 듭니다.그리고 일본인이 작성한 제정호적에 수형기록이나 옥사기록이 있으면 우선적으로 호적을 검토하여 그에 해당하는 적절한 조치가 있어야 할것 같습니다.
독립유공자와 후손들 여러분께서 많은 관심에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꼭 좀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이지 친일문제가 청산되고 역사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섭니다.
현재 그동안 찾은 많은 자료가 있습니다.
증손자 정병기 (국가유공자)
독립유공자 여러분 그리고 후손 유가족 여러분!!
아직도 독립유공자로 발굴되지 않은채 잊혀저가는 독립유공자분들에 대한 고인의 명예회복을 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려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자손들은 어렵운 환경과 경제적으로 빈곤한층으로 생활하거나 자손이 끊어진지 오래인 분들도 있답니다.
그런 진정한 독립유공자들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으로 고인들의 명예회복이 이루어져 구천을 맴도는 혼령이나마 편히 잠들 수 있게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분중 저의 증조부님께서는 경성형무소에서 41세의 나이로 복역 중 사망하신 분이나 아직까지 자료미비로 명예가 화복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자료는 자손이 찾을 수도 없는 실정입니다. 6.25동란에 불타고 정부가 정리하고 한후에 그 거증자료를 찾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광복회 관계자님이나 보훈처 관계자님 관심 가져 주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독립운동의 후손들 아직도 눈물로 세월 보내며 선조들에 대한 명예회복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모습 상상이나 하십니까?
참으로 눈물 겹습니다. 지금까지 남아있던 자료들 누가 고의로 소각 시키고 없앴는지 모를일입니다.
분명히 경성형무소 옥사한 기록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데 왜 그 기록에 관련자료를 찾을 수 없을까요?
경북에서 체포되어 경성형무소로 압송 이감되고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다고 하면 수형기록이나 수감일지 교도소 죄수 면회 방문자기록 재판기록문 사망자명단 등 다양한 자료가 있어야 하는데 본적지 읍면에 수형인명부나 범죄인명부도 없애 버리고 모두 말하기 쉽게 6.25동란때 소실되었다고 하면 모든 것이 면책되나요?
저는 증손자입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오직 자손된 도리를 해야겠다는 것이고 후손들에게 부끄럽제 않게 자손된 도리와 소임을 다하겠다는 각오와 다짐뿐입니다. 증손자의 각오와 사고가 잘못되었나요?
국사편찬위원회 관계자 여러분의 도움을 발고 있습니다. 좋은 소식 주시기 바랍니다.
증손자 국가유공자 정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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